/의경재현
 
 안녕하세요, 김현민 의원님 아들 서재현입니다. 평소 작가로서 평대에 선 경험은 있지만 오늘처럼 다른 분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 나선 것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이 되는데요…….
 
 찰칵, 찰칵, 찰칵, 찰칵.
 
 학생 때 어머니이신 의원님과 불화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불화라기보단…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확고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거죠. 그래서 대학 원서 준비부터 전부 혼자 힘으로 했던 기억이 나네요. 좋은 경험이었고, 이것도 교육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최근에 김현민 의원께서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았다고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연락을 받았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사실 어머니가 제 책을 읽어보실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바쁘신 분이기도 하고… 잠시만요, 잠시만요. 잠깐 컷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잠깐만 쉴게요.
 
 서재현은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감추며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인터뷰를 따던 기자는 그 김 의원의 둘째 아들이 작가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저토록 심약한 남자라는 것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디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아서 사실상 내다버린 자식이 아니냐는 말이 돌기까지 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남자는 단정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막힘 없이 말을 이어나갔지만 단 한 번도 환하게 웃지 않았고, 자신을 향해 비추는 조명이 부담스러운 듯 연신 시선을 옆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필연적으로 관심이 쏟아지는 유력 정치인의 자식으로서는 썩 알맞지 않은 기질이었다.
 
 한편 서재현의 머릿속에는 인터뷰가 끝난 후 잡혀 있는 일정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오랜만에 들은 의경의 이름 탓이다. 언젠가 그를 마주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퍽 익숙한 일처럼 태연해질 수도 없었다. 긴장한 재현의 손바닥에는 약간의 땀이 배어났다. 기대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서재현은 언제나 백의경에 대한 일이라면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 * *
 
 아름다움이란 뭘까? 뜬금없이 던져진 재현의 질문에 의경은 당황하거나 웃지 않고 묵묵한 시선을 던진다. 의경이 공들여 깎고 있는 대리석 옆에 앉아서 아직 반쯤 차가운 돌 안에 파묻혀 있는 하얀 발목을 바라보며 재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상식이란 단어를 빚어 놓은 것처럼 굴다가 가끔 엉뚱한 곳으로 튀는 사람이었다. 의경은 그가 생각을 마치고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정과 망치를 든다. 의경이 팔 한 쪽을 대리석에서 꺼냈을 때쯤에서야 재현은 생각에서 깨어나 의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문득 걸음을 멈추잖아.
그렇죠.
존재만으로도 시간을 내어 놓을 만큼의 값어치가 있다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인 것 같아.
형은 가끔 예술가처럼 말을 하네.
 
 그런가, 하고 재현은 웃는다. 손을 뻗어 의경의 조각을 만져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해가 중천이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작업실 밖으로 나선 두 사람은 때 아닌 눈발에 당혹스러워하다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직 초겨울이었다. 끈질기게 낙엽 몇 장을 붙들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던 교정. 얇게 쌓인 눈 위로 미처 계절에 맞추지 못한 차림새 탓에 드러난 발목이 희었고, 눈구름에 가려 부옇게 빛나는 볕 아래에서 눈발보다 하얀 머리칼이 흔들렸다. 형 발목 시려 보여요, 어 조금. 재현은 킥킥거리며 괜히 구두를 신었다고 투덜거렸다.
 
 그날은 눈이 내린다는 핑계로 가까운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만두 따위를 시켜 먹었다. 커다란 만두를 쪼개고 쪼개어 요령 좋게 입에 넣는 묘기를 선보인 재현은 식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의경을 주겠다며 약국에서 박카스 한 상자를 샀다. 의경은 내심 먹을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대놓고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느니 농을 섞어 얘기하며 상자를 받아 작업대 한 켠에 올려두었다. 의경은 늘 대리석에 붙어 앉아 작업을 했으므로 작업대 위 빈 공간은 재현의 차지였다. 재현은 종종 수업이 끝나면─그리고 의경의 스케줄이 맞는다면─랩탑을 들고 작업실로 찾아와 해가 떨어질 때까지 각자의 할 일을 했다. 학생이란 신분은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늘 할 일이 있었고, 재현은 가족에게서 연락이 오면 조용히 휴대폰을 뒤집어 두었다.
 
 그런 날이면 재현은 종종 과제를 하다 손을 멈추고 조각하는 의경의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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